태그 : 천자문

나보다 다른 이들을 빛나게 하는 것들

謂語助者 焉哉乎也

이를(위) 말씀(어) 도울(조) 놈(자) 어찌(언) 어조사(재) 어조사(호) 어조사(야)

말을 돕는 것은 언재호야가 있다.

 유시유종(有始有終)이란 말이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소리다. 

 천자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천지현황으로 시작된 길고 긴 장시는 언재호야로 마치게 된다. 언재호야는 그 자체로는 아무 뜻도 없는 글자다. 다른 글자의 뜻과 의미를 보충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번 문장을 우리 식으로 바꾸면 ‘어조사에는 [은는이가]가 있다.’ 정도일 것이다.
 

 언재호야를 설명하려면 응당 한문의 문법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굳이 문법이 필요할까? 그보다는 중고생들의 한문 참고서를 구입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 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자. 문법은 학교 수업으로도 차고 넘친다.


 언재호야는 스스로는 별 뜻이 없지만 중요한 글자다. 우리말에 어조사가 없다고 생각해보라. 문장만으로 어떤 단어가 목적어인지 주어인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듯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큰 역할을 하는 것들이 많다. 그 점은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왕이 될 수는 없고, 누구나 스승이 되어 다른 이를 가르치기만 할 수도 없다. 사람이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의 의지가 되고 의지를 할 수밖에 없다. 내가 행복하다는 것은 꼭 그만큼의 불행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감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말을 돕는 글자로 언재호야가 있다. 이 글자들은 다른 글자를 뒤에서 받쳐줘서 빛나게 한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처지가 영화로우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비천한 데 있다고 낙담하지 말자.


 우리들은 누구나 다른 누군가를 의지하며 의지하는 존재들이다.

by 기천검 | 2009/08/05 16:29 | 천자문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지혜는 겸손한 자의 것이다

 孤陋寡聞 愚蒙等誚

 외로울(고) 더러울(루) 적을(과) 들을(문) 어리석을(우) 어릴(몽) 무리(등) 꾸짖을(초)

 고루하고 들은 것이 적으면 어리석고 무지하여 무리의 비난을 받는다.

 고루(孤陋)는 외롭고 비루하다는 뜻이다. 과문은 들은 것이 적다는 말이다. 둘 모두 자주 사용하는 말이니 그냥 외워도 괜찮다.


 이번 문장은 천자문의 진정한 의미의 결말이다. 고루하고 들은 것이 적다는 것은 지금까지 천자문에서 언급한 삼라만상의 진리와 올바른 이치를 멀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저런 이치와 도리를 말했음에도 새겨듣지 않고 무시하면 결국 치욕을 당한다는 소리다.


 이번 문장을 달리는 천자문의 저자가 자신을 겸허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자신이 고루하고 배움이 적어 여럿에게 비난 받는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 상당히 겸손해 보이긴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구성이 올바른 도리를 권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바른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


 천자문엔 너무나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동양철학 전반에 걸친 요약서인 셈이다. 부자간의 효를 비롯하여 군신간의 예절과 남녀 간의 도리는 물론 천지자연의 모든 이치를 광범위하게 설명했다. 이렇게 대단한 것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스스로의 교만이 귀를 닫는다면 쓸 데 없는 것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무지하다. 누구나 어리석고 무지하므로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못하는 교만이야말로 치욕의 시작이다.


 마음을 열고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지혜는 겸손한 자의 것이다.

by 기천검 | 2009/08/05 16:28 | 천자문 이야기 | 트랙백

군자는 모름지기 의관을 바르게 해야 하는 법

 束帶矜莊 徘徊瞻眺

 묶을(속) 띠(대) 자랑(긍) 엄할(장) 배회(배) 배회(회) 볼(첨) 볼(조)

 띠를 띠고 엄숙히 단속하고 유유히 걸으며 먼 곳을 바라본다.

 긍(矜)은 자랑의 뜻으로 많이 쓰지만 여기서는 엄숙하다는 뜻으로 보는 편이 좋다. 띠를 묶었다는 말은 의관을 바르게 차려입었다는 뜻이다. 즉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허물이 없는 것인지 스스로 엄중하게 단속한 것이다.


 바른 옷차림은 예의 시작이다. 상대를 공경하는 예법의 한 가지다. 공자의 제자 중 하나인 자로는 한창 전투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갓끈을 고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 때 한 말이 ‘군자는 항상 의관을 정제해야 하는 법’ 이다. 

 현대사회에선 옛날처럼 고루한 차림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바른 차림새를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예는 몸을 감추는 데서 시작된다. 몸을 너무 드러내는 것은 이미 예법을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바르게 하고 나서야 비로소 유유자적할 수 있다. 내가 바르기 때문에 당당한 것이다. 군자는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먼 곳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무게와 중심을 지켜야 한다.


 생각하자.
 자로가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예를 지키기 위해 갓끈을 고치던 그 마음을.

 군자는 항상 의관을 바르게 해야 하는 법이다.

by 기천검 | 2009/08/05 16:27 | 천자문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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