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9일
애써 물러나면 다시 나서지 마라
索居閑處 沈黙寂廖
찾을(색) 살(거) 한가(한) 곳(처) 잠길(침) 잠잠할(묵) 고요할(적) 쓸쓸할(료)
한가한 곳을 찾아 거하니, 잠잠하고 고요하고 적료하구나.
양소와 같이 때를 알고 물러나 한가로운 곳으로 살아갈 곳을 정하면 마음의 수양을 쌓아야 한다. 혹자는 살아간 세월이 자랑스러운 이도 있겠고, 혹은 부끄러운 일이 있어 그것을 풀어가고 싶은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살아가며 이뤄야 큰 일이 후회하지 않을 삶을 만드는 것이다.
한가로운 곳을 찾아 떠났으니, 고요하고 적료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침묵이나 적료함은 이미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니 설명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미 양소의 경우를 예로 들었으니 특별한 설명과 해설도 필요 없다.
다만 여기서 말할 것은 스스로 떠난 뒤 만족하지 않을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애써 물러나고도 자신의 권위와 명성을 내세워 참견하고 끼어들어 치욕을 당하는 예가 많다.
- 찰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드나 그 가운데를 비게 해야 그릇으로써 쓸모가 있으며, 문과 창을 뚫어서 방을 만드나 그 방안이 비어 있어야 방으로써 쓸모가 있다. (도덕경 11장)
사람은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물러난 뒤엔 스스로를 비우고 나서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 자랑하고 나서면 애써 물러난 것도 의미가 없게 되지 않겠는가? 노자의 가르침처럼 방은 안이 비어야 쓸모가 있다. 겉만 집으로 세워졌고 속은 돌과 흙으로 채워져 들어갈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속이 빈 집이 아니면 사람이 들어가 쉴 수 없고,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지혜가 들어갈 수 없다.
- 성인은 그 몸을 뒤로 하지만 오히려 앞서지고 스스로 소외하지만 그 몸을 영존케 한다.(도덕경 7장)
물러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침묵하며 적료하게 지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진실로 마음을 비운 자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by | 2009/07/29 12:56 | 천자문 이야기 | 트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