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살펴 물러나는 것이 몸을 평안케 한다

兩疏見機 解組誰逼

 두(량) 성길(소) 볼(견) 틀(기) 풀(해) 짤(조) 누구(수) 핍박할(핍)

 양소는 때를 보아 관직을 버렸으니 누가 핍박할 것인가?

 
 양소는 한나라 때의 소광과 소수라는 사람이다. 둘 다 앞 자가 소자라 양소라고 했다. 두 사람은 2,000 석의 봉록을 마다하고 관직을 버렸다고 한다. 짤 조는 끈 조로도 사용하는 데, 전편과 연계하여 생각할 때 적절한 시기에 물러난 예라 할 수 있다.

 틀기는 때기로도 사용을 하는 데, 견기는 때를 보았다고 해석을 해도 좋다. 해조는 끈을 풀었다는 것으로 관직을 버렸다는 의미다. 두 사람은 관직을 버린 후 고향에 내려와 모든 재물을 일가친척에게 나눠주고 여생을 근심 없이 살았다고 한다. 이것은 때를 알고 스스로 물러난 사람이 얼마나 편안한 삶을 사는 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때를 알지 못하여 근심과 걱정 속에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근심거리를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환란을 자초하고 그것을 영예로운 순교 정도로 생각하니 한심할 뿐이다. 모두 과도한 욕심과 교만이 만든 수치일 뿐이다. 마음을 겸손히 하고 널리 귀를 기울이면 생기지도 않을 수치와 환란이 대부분이다.


 십묘의 땅이지만 뽕따는 이들이 한가롭네.
 나도 그대와 함께 전원으로 돌아가리.

 십묘의 땅이지만 뽕따는 이들이 한가롭게 거니네.
 나도 그대와 함께 전원으로 돌아가리.
- 시경 위풍 십묘지간


 주변이 어지럽고 혼란할 때는 잠시 피하는 것이 좋다. 때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보다 큰 것을 얻을 수 있게 해 준다. 욕심과 교만으로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by 기천검 | 2009/07/29 12:55 | 천자문 이야기 | 트랙백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