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6일
중용의 길을 따르라
庶幾中庸 勞謙謹勅
여럿(서) 얼마(기) 가운데(중) 떳떳(용) 수고할(로) 겸손(겸) 삼갈(근) 칙서(칙)
바라건 데 중용을 바란다면 수고하고 겸손하여 삼가고 삼갈 것이다.
서는 여럿을 나타내거나 많은 것을 나타내는 글자로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바라건데로 해석하는 편이 좋다. 기도 수의 많고 적음을 묻는 뜻이나 혹은 어찌 기로도 사용하지만, 바랄 기로 해석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러니 앞 절은 ‘바라건데 중용을 바란다면’ 으로 해석이 된다.
중용의 의미와 필요성을 생각하자. 이왕이면 사서의 하나이자 예기의 한 부분인 중용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러나 워낙 어렵고 심오한 부분이 있어 동양고전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겐 무리가 있다.
중용의 표제에 대한 주석 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 자장자가 말하기를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이라 하고 바뀌지 않는 것을 용이라 한다. 중이란 천하의 정도(正道)이며 용이란 천하의 정리(定理)이다.
그 자세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군자는 그 자리에 따라 행하고 그 밖의 것은 원치 않는다.
이 구절은 중용의 모습을 잘 표현한 글이다. 중용이란 그 상태의 모양에 알맞는 모양을 따르는 것이지 과격한 치우침을 말하지 않는다. 조금 슬픈 일에 혼자 대성통곡을 하는 일도 그렇고 과례(過禮)도 중용의 이치는 아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것이 바로 중용이다.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하여지지 않음을 내가 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지나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결론을 내린다.
- 도는 결코 행하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중요의 도가 얼마나 행하기 어려운 것인지 말한 것이다. 그러나 중용을 굳게 지킨 사람은 다음의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 순임금은 큰 지혜를 가진 분이다.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셨고 가까운 말을 살피기 좋아하셨으며, 나쁜 점은 숨기시고 좋은 점은 드러내셨다. 그 양극단을 잡으시고 그 중간을 백성에게 쓰셨으니 이것이 바로 순임금이 된 까닭이다.
자신의 지혜를 믿지 않고 수고로이 겸손하게 다른 이의 의견을 묻고 또한 백성들의 시중을 살폈다. 나쁜 점은 없애고자 했으며, 좋은 점은 더욱 드러나도록 갈고 닦았다. 그 결과 중용의 도리로써 마침내 천하를 얻었다. 중용의 이치는 비록 어렵지만 그것을 지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란 뜻이다. 설령 천하를 얻지 못하더라도 어려움을 자초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 by | 2009/07/26 01:54 | 천자문 이야기 | 트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