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추해지지 말자

施筵設席 鼓瑟吹笙

베풀(시) 자리(연) 베풀(설) 자리(석) 북(고) 비파(솔) 불(취) 저(생)

자리를 베풀어 (잔치를 벌이니) 북과 비파가 있고 피리를 불었다.

어느 때가 되면 나라의 최고 집권자가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는 것이 어느 나라 어떤 시대에나 통용되던 것 같다. 자리연은 자체가 잔치의 의미를 가진 관용적인 표현이다. 물론 잔치연은 따로 있다. 잔치란 것은 의례 그렇듯이 음악이 따르기 마련이다.
음악이란 서로의 마음을 가까이 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기 악기편에도 악(樂)은 가까이 하는 것이라 했다. 이런 음악을 즐기는 것에 관하여 옛 성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묵자는 노래란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에 절로 나오는 것이어야 하므로 음악으로 분류되는 것은 나쁜 것이라 규정했다. 맹자의 경우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양혜왕이 음악을 즐기는 것을 어찌 생각하냐고 질문하자 맹자는 백성으로 즐기라고 답했다.

-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신다면 왕노릇을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위정자가 자신만을 위해 웃고 즐기는 것을 옛 성현들 모두가 경계했다. 잔치에 음악과 함께 한 것이 술이다. 시경에 수록된 빈지초연이란 시에는 잔치자리를 벌이고 악기들을 준비하며 빈객을 맞는 자리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 내용이 이번에 논하는 구절과 사뭇 비슷한 면이 많다. 전문을 실었으면 좋겠지만 양이 많으니 혹 여유가 있으면 따로 공부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저 시의 일부를 살피는 것으로 만족하자.

- 손님이 첫 잔치에는 모두 점잖고 공손하네.
술 취하지 않았을 때는 예의범절이 의젓하더니
이미 취한 뒤에는 위엄과 예의가 없어지네.

사람이 맨 정신일 때와 술에 취했을 때의 행동은 아무래도 달라지기 쉽다. 술에 취하면 자제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술은 적당히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 취하고도 돌아가지 않으면 이것은 덕을 손상시키는 일이네.

취기를 느끼면 자제하고 멈춰야 한다. 많이 마시는 것과 잘 마시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리면 자신의 덕을 손상시킬 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덕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 저 취한 자가 추태부리는 것을
취하지 않은 자가 오히려 부끄럽게 여긴다네.

취하지도 않은 자가 덕을 손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술을 적게 먹어도 취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많이 먹고도 취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술이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취기를 보면 그것을 만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행치 않으므로 취하지 않은 사람도 역시 덕을 손상하는 것이 됩니다.

- 석잔 술에 기억하지 못하니
하물며 더 많이 마셔서라.

술 석 잔이면 취기를 느끼기 쉽다. 취기 속에서 자신의 평소 행위와 다른 일을 하기 쉽다. 그러기에 프랑스에도 포도주를 즐기되 취하지는 마라는 속담이 있다. 옛 글에 공자와 같은 사람은 백고의 술을 마시고도 덕으로써 취기를 눌러 취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왕충이란 사람은 논형에서 다음과 같은 비판을 한다.

- 한 자리에서 백고의 술을 마셨다면 그는 술꾼이지 성인은 아니다.

근거도 있다. 공자가 일부러 술을 마실 기회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며 음복할 때 외엔 술을 마실 기회가 적은데, 음복술은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공자는 예를 중시한 사람이므로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예기 옥조편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 예법에 따라 세번째 잔을 마지막으로 삼가 자숙하는 모양으로 물러난다.

술을 마실 때 석 잔을 넘기지 않는 것이 군자의 예법이었다. 현대에선 사회생활을 하면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더라도 술에 취해 스스로의 인격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by 기천검 | 2009/06/11 06:43 | 천자문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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